한국의 성매매 규모가 커진 이유는 무엇인가?
일제 강점기 이후의 역사적, 사회적 아픈 역사가 그 원인이 된다.
한국이 성매매 규모가 세계 6위라는 통계도 존재한다.
현재 성매매 방식과 규모를 만든 시초는 일제 강점기라고 할 수 있다.
1876년에 강화조약을 체결하고 조선을 강제로 개항한 이후에 개항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일본인 거류지에 성매매 집결지에 해당하는 유곽을 중심으로 성매매가 성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곽으로 만들어진 이후에 최근까지도 있었던 완월동, 청량리, 자갈마당이 이러한 곳이다.
1916년에 전국적으로 일제가 공창제를 시행하게 된다.
공창제(公娼制)란 일본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 이른바 제국 일본의 영역 안에서 실시하였던 성매매 관리제도이다. 포주가 여성의 성을 팔고 남성이 성을 사는 것을 국가가 합법 또는 묵인하고, 등록 및 강제 성병 검진 제도를 통해 법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다음백과사전>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79692
일제의 공창제 실시 목적은 제국주의 군대의 성병 관리와 조선으로 이주하는 일본인의 증가 때문에 이들에 대한 편리와 위생을 고려한 것이었다.
그 당시 신문 기사를 통해서도 가난한 여성들이 전차금이라고 불리는 빚에 의해서 인신매매되고 빈번한 자살 시도를 하는 등 성매매 여성들의 실상을 지금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소설에서도 유곽과 성매매 문제를 다룬 것이 있다.
한용운, <박명>: 성매매 업소를 어떤 식으로 운영했는지 성매매 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잘 나타나 있다.
나가기는 나가지만 내가 너를 거져 보낼 수는 없다.
내가 너를 데려오기에 부비가 백여 원이나 들었다.
대강대강 쳐보아도 예서 사람이 둘이나 내려갔지.
게 가서 며칠 묵새겼지, 또 세 사람이 차비 들여서 올라왔지.
<한용운 '박명' 중에서>
1980년대에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인신매매 사건이 많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구인광고 부녀자 유인 윤락가에 5백 명 넘겨, 15개파 40명 적발 21명 구속
거리에서 유인한 여중.고생과 일간지와 주간지에 낸 허위 구인 광고를 보고 찾아온 부녀자 5백여 명을 전국 사창가와 술집에 팔아넘긴 인신매매조직 15개 파 40여 명이 검찰에 의해 적발돼 이 중 21명이 구속됐다.
동아일보/1987.10.02.
인신매매 일당 6명 구속 영장
광주(光州)동부경찰서는 5일 10대 소녀와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을 여관등으로 유인, 성폭행한 뒤 서울과 인천의 사창가로 팔아 넘긴 OOO씨 등 6명에 대해 부녀매매및 미성년자 약취유인, 특수강간 혐의등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달아난 OOO씨 등 3명은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엽합뉴스/1993.08.05.
https://v.daum.net/v/19930805085300564
인신매매 관련 영화: <에미>(1985)
영화 <에미>(1985)
- 드라마 작가로 유명한 김수현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작품
- 홀로 사는 유명 작가의 딸이 납치되어 조직에 팔린다. 어머니는 직접 딸을 찾아 나서 집에 데리고 오지만 딸은 자살을 하고 만다. 어머니는 자신의 손으로 조직을 끝장내려 한다.
- 이듬해 나온 <안개 기둥>과 더불어 80년대 여성의 시대상이 드러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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